나를 향해서만 웃어줘. 나만 보며 속삭여줘. 너의 상냥한 미소를 나만 볼 수 있게 해줘. 널 아무와도 나누지 않게 해줘. 너의 온전한 첫번째가 될 수 있게 해줘. 고단한 외로움에 발끝을 적시지 않게 해줘. 너의 향기를 나만 맡을 수 있게 해줘. 나에겐 독이 되는 상냥함,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마.
너는 나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수상한 시간들은 레테의 강처럼 흐르고 흘러 내 기억의 샘에 잔뜩 고여 있어. 그 진지하지 못한 눈동자, 까맣고 짙은 고요한 눈빛, 나를 사랑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매일매일 내 심장을 한 웅큼 할퀴고 가던 그 불온한 시선. 아무것도 아니야. 하지만 가끔은 세상의 전부였어. 우리 둘, 그리고 너와 나. 사랑한 시간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간직할 만한 시간들이지. 난 너를 사랑했어. 그래서 모든 게 나쁘지는 않았어.
밤나무처럼 짙은 향이 나는 너의 눈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어. 몇 번이고 생각했어. 사랑은 증오와 낯선 관계가 아니라고. 먼 미래가 벌써부터 빛바랜 사진처럼 아득하고 외롭기만 하다. 서로가 없는 시간들이 남은 생을 채우고 그런대로 계절이 바뀌곤 하겠지. 그런 아득한 생각을 할 때면 견딜 수 없이 춥다. 너도 그렇니.
우리가 서로의 등을 보고 사랑했던 시간들은 나를 절망처럼 짙푸른 낭떠러지로 뒷걸음질 치게 해.
너는 알고 있니? 내 모든 기억과 추억, 집착과 애증과 욕말들. 너에게로 유예되어 있지 않은 것은 없다. 오로지 사랑이란 단어가 내 삶을 지배하던 그 들끓는 시절들, 온통 심장을 관통하는 나의 절망적인 사랑, 너를 위해 박제된 나의 열망.